|
목차 1.재일동포의 형성 2.재일동포 1세대 2.재일동포 2세대 3.재일 동포 3세대 토의주제 참고문헌 본문 1.재일동포의 형성 재일동포는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지배와 그 궤를 같이하면서 출발 했고 형성 되었다. 식민지 한반도에서 토지조사사업(1910년), 산미증식계획(1920)으로 일제의 토지 식량 수탈이 본격화되자 많은 농민이 토지를 잃고 급속히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유량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만주로, 일본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아 건너가게 되었다. 일본으로 향한 도항자는 초기에 당연히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재일동포의 숫자는 1925년에 13만 명 이었으나, 1930년대에 들어 조선에 남았던 가족을 불러들여 정착하는 사람이 속속 생겨 30만 명으로 늘어 났다. 그러나 재일동포가 결정적으로 증가하기 시작 한 시기는 강제로 노동자를 징용하기 시작한 1940년대부터이다, 1945년 8월에는 240만명으로 급속히 늘어 났다. 2.재일동포 1세대 -끈질긴 생존 의지 재일 동포는 일본에 오기 전에는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던 만큼 근대적 산업 노동의 경험이 전무했다. 게다가 일본어도 몰랐다. 당연히 일본인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불결한 일을 도맡아 가장 밑바닥 노동자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종사한 직종은 토목 노동자, 잡역부, 일용 노동자, 탄광 노동자, 공장 노동자 등이었다. 그들은 일을 잘했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어떤 한국인 노동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항상 자랑했다. 공사 현장에서 한국인처럼 일을 한꺼번에 빨리 끝내는 사람이 없다고, 다른 아시아계는 물론이고 일본 사람도 절대 따라오지 못한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임금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직종에서 일본 노동자의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 게다가 식비, 목욕비 등 각종 명목으로 공제하여 그나마 전액을 수중에 넣기란 불가능했다. 설령 임금 전액을 수령했다고 해도 빈민굴에 사는 일본의 최하 빈민층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조선인은 악착같이 저축하고, 알뜰하게 고국으로 송금했다. 참고문헌 정혜선, 일본사 다이제스트 100 정혜선, 한국인의 일본사 , 재일한국인사100년 키워드 재일동포, 역사, 재일동포 세대 |
2017년 4월 30일 일요일
재일동포의 역사
재일동포의 역사
댓글 없음:
댓글 쓰기